작년에 TVING (티빙)에서 우연히 보고 기대 이상으로 참 좋았던 기억이 있어 최근에 Netflix (넷플릭스)에 업데이트된 것을 보고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역시 그 때 그 느낌 그대로 좋았습니다.
여주인공 윤지호(정소민)은 30세 드라마 보조작가 입니다.
경상남도 남해에서 나고 자란 88년생으로 공부를 잘해 가부장적 아버지는 교대를 보내려했지만,
글쓰는 게 꿈인 그녀는 아버지 몰래 원서를 쓰고 서울 명문대 인문학과 입학 전에 서울로 야반도주를 합니다.
이것이 순둥이 그녀의 첫번째 도라이 기질이 발현된 사건이라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자신의 꿈대로 드라마 보조작가 일을 합니다.
3년 이상 성실하게 일을 하며 지냈으나 뜻하지 않게 남동생의 속도위반으로 남동생과 같이 살던 집에서 나와야하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홈리스’가 된 그녀는
까다로운 조건으로 룸메이트를 구하던 ‘하우스푸어’ 집주인 남세희의 집에 월세살이를 하게 되면서 이 둘의 로맨스가 펼쳐집니다.
남주인공 남세희(이민기)는 80년생 38세 서울 남자, ‘결혼 말고 연애’라는 인기 앱을 개발한 IT벤처회사의 수석 디자이너 입니다.
인생에서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집과 고양이 뿐이라며,
집 대출 갚는 일과 고양이 돌보는 일 외엔 세상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과/공대 남자 입니다.
그는 회사에서도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지나치게 선을 긋습니다.
그가 마음을 주는 이는 오직 고양이.
휴식은 집의 식탁에서 편의점 도시락 먹으며 조용히 쉬기와 거실에서 맥주 마시면서 아스날 축구 경기 보기 입니다.
1화에 보면, 그가 왜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처음 만난 그에게
사랑을 못해본 채 서른이 된 그녀는 혼자 넋두리를 하며 우울해하자 그는 무표정으로 조용히 고양이의 뇌에 대해 말해주며 위로합니다.
“그 짧은 문장에 서른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쓰다니 신피질의 재앙이네요.
스무살, 서른 그런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뇌 바깥 부위인 ‘신피질’ 입니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두뇌 바깥 부위인 ‘신피질’이 없죠.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우울해 하거나 지루해 하지 않아요.
그 친구에게 시간이라는 건 현재 밖에 없는거니까.
스무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라는 걸 그렇게 분초로 나눠서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 상에 인간 밖에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나이라는 약점을 공략해서 돈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게 만들죠.
서른도 마흔도 고양이에겐 똑같은 오늘일 뿐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이번 생은 어차피 모두 처음이니까.”
그의 매우 이과/공대스러운 말을 들으면서 그녀는 생각합니다.
‘이상했다. 저 이상한 말이 그 날은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다.’
그에게 고양이는 이렇게 감정의 소비 없이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도 우울해 하지도 지루해 하지도 않고
똑같은 오늘을 편안히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삶의 동반자, 친구 였던 겁니다.
그는 어차피 혼자 사는 집에 남는 방 하나를 월세 주어 집 대출 갚는데 보태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합니다.
야근이 많은 자신의 일을 대비해서 집의 분리수거와 고양이 돌보는 일을 룸메이트의 추가 조건으로 둡니다.
그 전의 남자 룸메이트들은 이 조건들을 하나같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윤지호의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착각해 룸메이트로 받아들였고,
그녀의 완벽한 조건 수행에 더할 나이없이 룸메이트로 만족하게 됩니다.
윤지호도 남세희라는 이름을 여자로 착각하여 보증금 없는 월세 조건에 아주 만족해 합니다.
원래 글을 쓸 때마다 막히면 청소를 하는 좋은 습관을 가진 깔끔하고 성실한 성격인 그녀에게는
집주인의 룸메이트 부가조건(분리수거, 고양이 돌보기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둘은 서로가 동성이 아닌 이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라 이 월세 계약을 해지하려 했으나,,,
나중에는 성별만 제외하면 너무나 완벽하게 수지타산이 맞는 상호 계약이라 여기게 됩니다.
게다가 이들은 둘다 아스날 축구 팬으로 맥주 마시면서 축구 경기 보는 일상까지 맞아 너무 편안합니다.
그렇게 이들은 2년 결혼 계약까지 하게 됩니다.
여자에게는 가부장적 아버지 밑에서 사는 남해 보다는 서울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보증금 없는 저렴한 월세 방이 필요했고,
남자에게는 결혼 재촉하는 부모님으로부터 해방되고, 윤지호가 여태껏 만난 룸메이트 중 가장 완벽한 조건 수행자 였기에
2년 결혼 계약은 너무나 서로에게 수지타산이 맞는 계약이라고 생각되어졌던거죠.
사랑이 없으니
2년 동안 여자는 경제적 독립을 준비할 수 있고,
남자는 안정적인 룸메이트로 대출도 갚고 결혼 재촉도 더이상 없을거라 생각한 겁니다.
이렇게 결혼한 그들에게 의도하지 않게 사랑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수지타산이 맞는 결혼이라 여겼던 그들에게
서서히 ‘감정’이 들어오게 된거죠.
11화에서 <방문객> 이란 시가 나옵니다.
저는 이 시가 참 좋았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러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나는 궁금했었다.’
그녀는 어느새 좋아진 그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그러다 그의 방에서 우연히 보게 된 시집 안에 붙어있는 쪽지를 보고
그의 옛사랑의 아픔을 보게 됩니다.
‘그 길을 알게 된 순간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 이유는 질투 때문도, 좌절 때문도 아니다.
12년 전 똑같은 날에 나는 사랑을 꿈꿨고,
당신은 그 사랑을 끝냈다는 사실이 그냥 좀 슬펐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내심 알았지만 겉으로는 모르는 척 합니다.
모태솔로인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인 것도.
그러나 그는 지난 사랑으로 사랑이 뭔지 아니까
이 느닷없이 다가온 두번째 사랑이 더 무섭고 주저하게 됩니다.
그는 (그녀가 그 시집을 이미 본지도 모르고) 그녀에게 말합니다.
“제가 20대 때 좋아하던 시가 있는데.
거기 보면 그런 말이 나와요.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그 마음이 오는 것이다.
막상 그 시를 좋아할 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그 말을 알고 나니까 그 시를 좋아할 수 없더라고요.
알고 나면 못하는 게 많아요.
인생에는..
그래서 저는 지호씨가 부럽습니다.
모른다는 건 좋은 거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세희씨도요.
예전에 봤던 바다라도 오늘 이 바다는 처음이잖아요.
다 아는 것도, 해봤던 것도, 그 순간 그 사람과는 다 처음인거잖아요.
우리 결혼처럼.
정류장 때 키스처럼.
그 순간이 지난 다음 일들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그렇게 된거지.
저 중에 어떤 얘는 그냥 흘러가고, 어떤 얘는 부서지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세희씨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제를 살아봤다고 오늘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
“사람들이 왜 답답할 때 바다를 보러 오는지 알겠네요.
여기서는 자기 마음을 만날 수 있군요.”
이 남해 바닷가에서 그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부서지기도 했던 그의 마음이 그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14화에서 보면 그는 책의 내용을 통해 그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12년 동안 내 마음 속에서 살아남았던 말들이 어느 순간 이렇게 없어졌을까.
그렇게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던 말들이었는데.
‘말도 사람 마음에 가야 살아남는 거 알아?
입 밖으로 뱉어야만 마음에 가서 닿는다고.’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일부러 선 긋는 거 하지 마세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 중에 어떤 얘는 흘러가고 또 어떤 얘는 부서지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되는거에요.’
그녀의 따뜻한 말들이 쌓이고 쌓여...
‘세희씨도 너무 걱정 마세요.
어제를 살아봤다고 오늘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내 죽은 마음에 대신 살아남았다.
그렇게 그는 다시 입 밖으로 고백하고,
그녀의 마음에 그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는 말들을 하려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엄청 어색해 하지만 내심 행복하며.
16화 마지막 회에서 그들은 혼인신고를 하고, 계약서를 다시 씁니다.
그녀는 더이상 보조작가가 아닌 작가로 계약을 해 경제적 독립도 합니다.
집도 이사해 전세금을 절반씩 부담하여 공동명의로.
결혼 계약 내용은 매년 갱신, 대전제는 항상 똑같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최우선으로 할 것”으로.
그녀는 말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 였다.
그 이상의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우리는 남들에게 도라이 부부가 되었고,
그만큼 우리의 생활에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을 택해도 생각보다 그렇게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어떤 형태로든
옆에 있는 이 사람과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는 것.”
이제 그들은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편안하게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랑만 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여러분에게 모든 진심을 담아 건투를 빕니다.”
이 드라마에는 이 커플 외에도 그녀의 두 친구의 사랑 이야기도 나옵니다.
세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모두 재밌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전 이 커플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거라는 시와,
그녀의 따뜻한 말들이 쌓여 그의 죽은 마음을 살린 게 마음에 들어서 입니다.
왠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같이 느껴져서 입니다.
주님의 따뜻한 말들로 몰랐던 내 마음의 곳곳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주님의 복음으로 내 삶이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처럼..
14화에서 어떤 사람에 대해 묘사할 때 사용한 말이 떠오릅니다.
“단단한 사람. 단단한데 그 단단함으로 주변을 해하는 것이 아닌, 품을 것 같은 나무같은 사람”
‘나도 저런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
주변을 품을 것 같은 단단한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행복한 드라마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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