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3장 새번역
1. 가나안 전쟁을 전혀 겪어 본 일이 없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시려고,
주님께서 그 땅에 남겨 두신 민족들이 있다.
2. 전에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들에게,
전쟁이 무엇인지 가르쳐 알게 하여 주려고 그들을 남겨 두신 것이다.
4.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과연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조상들에게 내리신 명령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알아보시려고
이런 민족들을 남겨놓으신 것이다.
NIV 한영해설성경
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1-2. These are the nations the LORD left to test all those Israelites who had not experienced any of the wars in Canaan
(he did this only to teach warfare (전쟁) to the descendants of the Israelites who had not previous battle experience):
4. They were left to test the Israelites to see whether they would obey the LORD’s commands, which he had given their ancestors through Moses.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손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사사기 말씀을 통해 가나안 사람들을 남겨두셨다고 하십니다. 전쟁 경험이 없는 자손들에게 전쟁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전쟁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남겨둔 것이라고만 여겼으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내버려두신 이유가 계셨던 것을 이번 말씀을 통해 깊은 뜻을 알게 하십니다. 왜 전쟁 경험이 없는 자손들에게 전쟁을 가르치셔야 했을까요. 전쟁 경험이 없는 것은 좋은 것 아닐까요.
평안하게 사는 것은 좋은 것 아닐까요. 마치 고생을 많이 한 부모가 자식에게는 고생하지 않는 삶을 제공해 주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이 생각이 납니다.
그게 나쁜 건 아니고 부모들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자식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선조들의 광야에서의 삶, 가나안에서의 정복 전쟁의 삶에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나게 하십니다.
광야에서의 삶에서는
구름 기둥, 불 기둥을 보면서 모세를 따라 광야를 걸어가고 멈춰 장막을 치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매일 일정량을 받고 감사히 먹는 삶의 방법을 배우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을 계속 장막에 머물기도 할 것이고 또 어떤 때는 이제 장막을 정리하고 광야를 걷는 날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이 모자른 날이 있었고 메추라기 고기를 먹는 날이 있었고 오아시스와 나무 그늘을 만나 쉬는 날도 있었습니다.
십계명 돌판을 모세가 받으러 가는 날에는 기약 없이 계속 산 아래에서 기다리며 장막에서 머물며 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모세가 두팔 벌려 기도할 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 싸움을 하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 기도를 통해 승리하는 경험도 주셨습니다.
광야에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모세를 통해 바라보게 하시고 모세를 통해 주신 명령들을 순종하여 삶을 사는 경험들을 하게 하셨습니다.
불과 몇일이면 건나갈 광야 길은 40년이 되도록 길어진 것은 불평, 불만,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굳게 신뢰하지 못하고 입술의 죄를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입술을 지켰다고 해서 봐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나 봅니다.
열 사람의 정탐꾼의 믿음 없는 말들로 공동체는 길을 돌아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굳게 신뢰하는 훈련을 40년간 했습니다.
믿음 없는 말들을 했던 세대가 광야에서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새대가 다시 새롭게 약속을 믿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은 갈렙 역시 살아 약속의 땅을 받고요) 가나안에서의 삶 역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함으로써 승리하는 전쟁을 경험하게 하셨고,
순종하지 않았을 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게 하시고 승리 대신 패배로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하시며
상대의 강함과 약함에 전쟁의 승패가 달린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강함과 크기에 상관없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명령에 정확히 잘 순종하는지에 따라 승패는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질문하고 여쭤보고 순종해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기브온 주민들을 통해 알게 하셨습니다.
어쩌면 전쟁을 모르는 자손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서는 상황이 어떠하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삶을 가르쳐 주시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건 내게도 동일할 것 같습니다. 사사기 2장 10절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경고하시는 듯 합니다.
이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나만 알아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한 세대만 알아서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나와 모두가 세대와 세대를 이어 계속 경험해 가고 자신들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또 발견하게 하십니다.
내가 자녀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강요한다고 해서 믿어지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 것을 이미 십대 초가 된 자녀를 통해 알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집안에서 자란 남편을 통해서도 알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되기 까지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고
나에게도 과정이 있었듯이
남편에게도 과정이 있었듯이
자녀에게도 과정이 필요함을 알게 하십니다. 아픔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정말 꽃길만 걷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 마음 같습니다.
참된 부모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참된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같습니다. 필요한 과정이 있어야 함을 알게 하십니다.
내가 부부애가 안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겪은 다양한 상처들이
결혼하여 부부애가 안좋을 때 얼마나 내적 치열한 싸움을 주님 앞에서 하며 부부애를 지키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며 살았는지..
내 아픔을 내 사명이 된 것 같이 난 가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내 삶으로 뼈저리게 실감하며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친정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나에게는 가족 공동체가 한 개인한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안정감과 평안이 얼마나 성인이 된 자녀한테 지지대가 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면 그런 경험이 적은 자녀는 나와는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 안에서 자라면서 겪는 나와 다른 스트레스,
자신만이 갖고 있는 연약한 체질로 인한 어려움과 그로 인한 생각지 못한 문제들로 힘들어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난 혼란스럽고 해석도 되지 않아 힘들고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내가 보호하고 싶은 자녀가 내가 생각지 못한 문제들로 겪는 아픔을 보면서
내가 막아주지도 못하고 해결해 주지도 못하는 한계와 무능력에 낙심도 되었습니다.
왜 주님은 이런 것을 나와 자녀에게 겪게 하실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세상에서 주님의 자녀들을 주님의 방법으로 전쟁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전쟁이 있습니다.
멘탈 전쟁, 환경적 전쟁, 사람 인간관계 문제, 공부나 회사 직장 생활, 세상 문화, 경제적 문제 등..
세상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질 것 같은 문제들이 마치 영적 전쟁과 같이 많습니다.
이 구멍을 막으면 다른 구멍이 날 놀래킬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 컨트롤, 통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왔으면 주님께 배워야하는 것 같습니다.
내 방법이 아닌 주님께 배우면서 이 세상의 어려움과 힘든 문제들을 주님의 뜻과 방법대로 가르쳐 주신 대로 순종하여 승리하는 경험들이
패배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배우고 미흡했던 부분, 내 중심과 내 실체를 보게 되는 면들을 쓰디쓴 아픔이지만 그 또한 성장에 필요한 경험 같습니다.
이런 경험이 나에게도 자녀에게도 계속 필요한가 봅니다.
이 영역에서는 익숙해져 이제는 평안하다 싶으면
어느 정도 누리다보면
주님께서 새로운 영역을 보이시고
그 영역에서 새로운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훈련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아..또…
이제 그만하고 싶다..
아..
힘들다..
버겁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툭 나오는 말과 생각들이 내 깊은 진심이겠지요. 그러나 생각을 정리해 보면
오늘의 말씀처럼
전쟁의 방법은 동일합니다.
상황과 전선은 달라 보일지라도.
언제나 방법은 같습니다.
아니 방법은 달라 보여도
태도와 순종의 자세는 동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순종하기.
잘 듣기.
제대로 듣고 잘 순종하기.
바로 승리의 기분을 못 느끼더라도
묵묵히 순종하고 기다리기.
시간이 흐르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 옳다는 것을,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늘 내 생각과 마음이 따르기 싫을 때가 있고
옳은 것을 알지만 하기가 싫고
그런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마음 조차도 주님께서는 달래주시고 고쳐주시고 위로와 지지와 도울자들을 붙여주시며
주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도취되어서
때로는 제대로 알고 죽을 길로
아니면 생명의 길인 줄 알고 당당히 기쁨으로
또는 훈련된 자로서 담담히 잠잠히 의젓하게 순종하는 자녀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친밀감과 신뢰를 쌓아가면서 이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내 마음을 고칩니다.
주님께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며 쌓여가는 친밀감과 친숙함과 신뢰감이 좋아서 인 것 같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을 때 느껴지는 승리감, 도취감은 어느 순간이면 없어지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며 쌓여가는 친밀감과 친숙함과 신뢰감을 내게 풍성함과 기쁨과 감사로 생명을 줍니다.
생기로 인해 난 일상을 기쁘게 살 수 있고
일상 속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마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생각도 많고 두려움도 많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도 힘들어합니다.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안정감과 안전을 원하는 유형입니다.
원래는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지치고 힘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튼 난 이제 새로운 분야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시점에서
도전하고 개척하고 경작하고 해야하는 시점에서
주님께 또 새롭게 많이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주님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 길에서 어떻게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세심히 세세히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길 기도합니다.
손재주가 없는 내게 함께 해주시어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시고 순조롭게 평안으로 기쁨과 즐거움과 재미를 배워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뭔가 즐겁게 재밌게 재미로 하는 것이 별로 없는 성격 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무엇을 재밌어 하는지, 무엇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남은 평생 무엇을 즐겁게 재밌게 하면서 살면 좋을지 알려주셔서
나의 이 허망함과 공허감을 주님으로 더욱 채워주시길 주님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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